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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EUDAIMONIA

유다이모니아 혹은 에우다이모니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나오는 행복이란 뜻의 그리스어이다.

사실, 이 단어를 행복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리스어, 혹은 모든 언어들 중에 다른 나라의 말로 확실하게 정의되기 힘든 말들이 여럿있다.

eudaimonia 도 그런 단어들 중 하나이다.


에우다이모니아 (그리스어: εὐδαιμονία [eu̯dai̯moníaː])는 일반적으로 행복이나 복지 영어화되는 그리스어 단어이다. 그러나, "인간 번성"이 더욱 정확한 번역으로 제안된다.[1] 어원적으로, 그것은 단어 "에우" ("좋은")와 "다이몬"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자주 "", "우수"로 번역되는 용어 "아레테", "실제적 또는 윤리적 지혜"로 번역되는 "프로네시스"와 함께,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 정치 철학의 중심 개념이다.[2]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에서, 에우다이모니아는 (오래된 그리스 전통을 기반으로) 가장 좋은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그러므로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실현하는지 고려하는 (및 경험하는) 것이 윤리학 정치 철학을 포함한 실질적 철학의 목적이다.

(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C%97%90%EC%9A%B0%EB%8B%A4%EC%9D%B4%EB%AA%A8%EB%8B%88%EC%95%84)


철학적 물음에는 대표적인 몇 가지가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 중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의 조건이라는게 있을까.

플라톤은 부유한 집안, 잘생긴 외모, 타고난 신체 이런 외형적인 요소가 

행복은 아니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플라톤의 국가론을 부면 플라톤은 엘리트주의를 주장했다.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이들만이 정치를 할 수 있고, 그 사람들만이 자식을 가질 수 있게 만들기를 원했다. 

그런 플라톤의 입장에서 행복의 요건엔 좋은 머리, 신체, 외모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사실 어느 정도 공감은 가는 말이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어느 날 앞을 볼 수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빛을 보고 색깔을 보고 자연을 보며 

행복해할 것이다. 

그런면에 있어서 처음부터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보이는 모든 것들에 행복을 느낄까? 

대부분은 소중함을 모른다.

간혹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사함을 느끼며 살 수는 있다.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을 알려면,

죽음이 항상 옆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행복은 사람마다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가?

예전에 소확행(지금도 있지만)이 유행하고, 책방에 

소확행 관련 책들이 즐비했을 때가 있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과연 그게 진짜 행복일까? 

일을 마치고 집에서 마시는 맥주한잔, 

좋아하는 음악 듣기 혹은 앨범 사기,

맛있는 음식 준비 혹은 먹기,

등등

단순히 자기 만족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의 조건엔 기본적으로 2가지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죽음이며,

두번째는 사랑이다.

momento mori 죽음을 항상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사랑이 있어야한다.

죽음과 사랑이 있는 행복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네이버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 스틸컷